일상's/에세이

지식(知識)과 사고(思考)

Best정보통 2021. 6. 1. 09:24
728x90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별세하고 그가 1997년에 쓴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생각과 연관된 단어를 브랜드 메시지에 사용하는 글로벌기업으로
애플(Think different), IBM(think), 휴렛패커드(invent), BASF(We create chemistry) 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철저한 ‘지식’의 신봉자로서, 지식이 풍부해지면 생각 즉 사고력은 지식의 양에 비례해서 절로 좋아진다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전혀 그렇지 않음을 깨닫고 나서 사고(思考)와 지식(知識)은 어떻게 다르고 상호 간에 어떤 관계에 있으며 생각한다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하게 되었습니다.


사고와 함께 인간의 지적능력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지식이지만 여기에는 커다란 함정이 숨어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지적능력이 높은 사람은 이 두 개를 겸비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식을 중시하는 가치관과 관점은 사고력과 전혀 다르고 어떤 경우에는 정반대로 작용합니다.



우선 지식(知識)에 대해서 살펴보면 지식은 정보(情報)의 상위개념으로, 정보의 규칙성이나 경향을 체계화한 즉 정제(精製)된 정보를 일컫습니다.  
지식은 단독으로는 가치가 미미하나 다른 지식과 결합할 때 비로소 큰 가치를 창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진부해지고 新지식으로 갱신하지 않으면 가치를 점차 상실합니다.  
지식근로자가 호기심을 잃지 않고 다양한 네트워킹을 통해 스스로의 지식을 지속적으로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식은 기본적으로 과거지향적이며 과거의 것은 확정되어 있기에, 이미 정답이 있고 도달과정도 하나이며 질서정연하게 정리되고 분류되어 있습니다.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하드디스크와 같습니다.  


이에 반해 사고(思考)는 ‘논리에 따라 의식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으로,
미래지향적이고 없는 답을 찾아 질문에 질문을 더하는 과정에서 도달경로가 무한히 많아집니다.
본질적으로 맞는지 틀리는지에 대한 개념자체가 불분명하며 여러 팩트를 복합적으로 엮어야 하는 Chaos의 세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에 해당한다고나 할까요.  



사고의 전개를 통한 문제해결의 효과적인 방법으로는 “왜?”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보고를 받을 때 적어도 다섯 번씩 “왜?”냐고 추궁해서 임원들을 진땀나게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도요타식 문제해결법 “5Whys (なぜなぜ分析)”에서는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 계속 ‘왜?’ 라는 질문을 던져 문제요인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 문제의 근본요인을 찾아 대책을 세우게 합니다.  즉,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문제의 일시적인 처방은 언제고 반드시 문제가 재발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견 무관해 보이나 유기적인 관계에 있는 문제의 ‘뿌리인자(因子)’를 발라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 기존 자신의 생각이나 대다수의 생각, 즉 대세에 편승하려는 자신의 감정에 역행하여
마치 겨울연어가 강물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듯 정반대의 세계로 사고를 전개해 나가는 것도 매우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사고(思考)는 근력운동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어 골치가 지끈지끈 아픈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기에 꾸준한 노력으로 습관들이지 않으면 쉽게 게을러지기 마련입니다.  매사에 쉽게 결론을 내려는 안이한 마음, 편안하고 무난한 방식에의 안주, 실패를 감수하기 보다 잘할 수 있는 일만 골라서 하려는 마음이 모두 나태한 사고에서 비롯됩니다. 곤란한 문제를 앞에 두고 가능/불가능을 지레 판단하기 보다 설사 실패로 끝나더라도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 지에 중요한 가치관(価値観)를 두는 마음가짐이 진정으로 패기(覇気)있고 혁신적(革新的)인 사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지식과 사고의 차이를 이해하고 확실히 구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많은 경우, 어떤 문제를 접했을 때 자신의 머리 속에 저장되어있는 정보나 지식을 검색하여 그대로 출력해놓고 “사고(思考)했다”고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또한, 자신의 전문분야일수록 머리 속에 안 되는 이유를 뒷받침하는 근거들(데이터/정보/지식)이 차고 넘쳐 이를 사고회로를 거치지 않고 거침없이 열거하게 되면서 결국 보수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혁신(革新)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이런 경우, 지식은 사고전개의 재료나 촉매제가 되기는 커녕 의식의 자유로운 흐름을 방해하고, 구속하고, 흡수해버리는 독(毒)이 되어 머리회전을 굳게 만들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기존 지식이나 정보 (고정관념)에 방해받지 않는 중립적인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무분별한 정보수집 보다는 ‘사고를 위한 의사결정 기준’을 먼저 정해놓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보를 선별적으로 수집하는 게 효과적입니다.

 

21세기 초정보화 사회에서 현대인은 정보량이 늘어날수록 점점 더 사고하지 않게 되는 ‘사고(思考)와 정보(情報)의 패러독스’에 빠져있습니다. 이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지식을 경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知識)보다는 사고(思考)를 중시하는 Mindset’으로 정보의 유입을 제어하여 항시 양적으로 “思考>知識“라는 상태유지에 철저를 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가 차단된 상태를 일정기간 유지하는 것도 사고와 지식의 밸런스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며,
이는 근력운동(思考)과 탄수화물(情報)섭취의 밸런스가 피트니스 유지에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공지능(AI)시대의 도래로 AI가 우리 생활 곳곳에 침투하는 날이 머지않은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아는 것이 힘’이 아닌 ‘생각하는 것이 힘’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1997년 당시 50대 중반이었던 이건희 회장은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는 통찰력으로 패러다임 전환의 위기 조짐을 감지했습니다. 그리고 시대 조류에 휘말리지 않으며 미래를 선도적으로 개척하고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미래의 변화에 대한 수많은 시그널을 ‘생각을 통해’ 스스로 해독(解読)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다급한 메세지를
그의 에세이집 제목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반응형